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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어 본 톨스토이 참회록: 삶의 의미]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내가 살아있음을 알게 하는 심장박동소리와 함께 놀라 깨어난 새벽

침침한 눈을 비비고 커피한잔을 내리며 머릿속에 떠오른 책한

톨스토이의 참회록

세계 3대참회록주의 하나로 알려진 톨스토이의 참회록은 어거스틴과 루소의 참회록과 비교하여도

손색이 전혀 없을 만큼 훌륭합니다.

톨스토이의 약력은 간단히 지난번 포스팅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담아 놓았습니다.

 

->2013/09/08 - [해피앨리슨의 서재] - [톨스토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1&2]

 

톨스토이 러시아 작가이며 개혁자이고 도덕적 사상가로서 어린 시절 기독교를 떠났다가 노년시절 참회록에

나오는 위기를 거쳐 결국 하나님을 재발견하고 다시 기독교인이 됩니다.

끊임없이 죽음과 삶의 경계선에서 순간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불태운 개인주의적이면서도

귀족주의적인 그는 노년의 삶을 농촌에서 보내고자 시도하였지만

성공치 못하고 말았습니다.

 

역대 문호, 철학자들을 보면 사람이 살면서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이

삶의 마지막을 향하는 결정타는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누구나 '사람은 사는가?'

삶의 진정한 의문을 품은 나는 사는가? 대한 고민을 하면서

고독으로 열정을 불태우며 살아갈 있는 것이 인간이란 생각을 합니다.

당대에 인정받지 못했던 니체나 종교의 벽을 넘나들었던 톨스토이나 성경의 곳곳에 나와있는 인물들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적 갈등으로 순간을 괴로워하면서 속에서 진리를 찾고 삶을 재발견하고 내가 과연 붙들고 살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곤 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외로움은 내가 혼자가 아니기에 느끼는 것이고,

고독은 그만큼 삶을 치열하게 살고 있다는 증거이고,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삶에 대한 동경이며 열정인 것입니다.

사춘기만 아픈 것이 아닙니다.

정서적으로 불안한 사람만이 고뇌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을 치열하게 살며 고독을 씹고, 속에서 아파하며 결국 진리를 찾아 나선 톨스토이와 같은 역사가 있기 때문에

오늘 나의 고뇌가 아프지만은 않은 것입니다.

10대에는 어떤 느낌으로 톨스토이의 참회록을 집어 들었었는지 가물거리지만

오늘 집어 참회록은 가슴을 따뜻하게 쓸어주는 안도 같은 한숨이었습니다.

142장의 얇은 책이지만 전문의 감동을 담을 없어

처음 펼친 단원 6 삶의 의문에 대한 탐구, 삶의 의미는 어디에 있는가? 나온 내용을 옮겨 봅니다.

 

톨스토이 스스로가 내린 결론

나는 이제 과학을 끈덕지게 탐구하여 모든 진리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나의 삶의 의미에 대한 궁금증은 과학으로써는 없는 것이다.” [P. 67]

 

 아무리 과학적으로 증명해 내려 해도 찾을 없고,

그래서 찾아나선 길에서 이론과학 방면에서 다시 법학, 정치학, 역사학 속에서 어중간히 헤매다가

결국 어떤 해답도 얻지 못한 그의 결론이란 이것이었습니다.

독일의 철학자인 쇼펜하우어 [교수의 철학] (Professorial Philosophy)이라고 명명한,

새로운 철학적 범주에 의하여 존재하는 모든 현상을 분류하고 거기에 새로운 명칭을 부여하는

그치는 철학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철학자가 가장 소중한 문제를 소홀히 간과하지 않는 철학에 있어서는

언제나 해답은 동일한 법이다.

소크라테스나 쇼펜하우어나 솔로몬이나 석가모니나에 의해 내려진 대답인 것이다. [P. 69]

 

소크라테스 임종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삶에서 멀어질수록 만큼 진리에 다가가는 것이다. 진리를 사랑하는 우리는 세상의 삶에 있어서

무엇이 목적인가?

육체와 육체적인 생활이 빚어내는 모든 악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죽음이

우리에게 다가옴을 슬퍼하는가?

현인은 평생 자기 자신의 죽음을 추구한다.  그러므로 현인에게는 죽음이 두렵지 않을 것이

당연한 것이다.” [p.69]

 

쇼펜하우어 이렇게 말하였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그토록 전멸을 두려워하고 살기를 원한다는 사실은 우리 자신이 그러한 생의 욕망

이외의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표시한 것뿐이다.“[P. 70]

 

솔로몬 이렇게 말하고 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세대는 가고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아래는 새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것이라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P. 70]

 

너무나 많은 지식은 나로 하여금 줏대 없는 수다쟁이로 만듭니다.

흐르듯 쏟아지는 지식의 창고에서 스스로 깨닫고 가치관이란 것을 정립하지 않으며

결국 아무 생각 없이 흐름에 딸려가는 돌머리가 되는 같습니다.

그로 인해 오늘 내가 말이 내일은 번복되는 실수가 될까 두려울 뿐입니다.

삶이란 그런 있는 합니다. 아무리 애써서 살아 보려 해도 실수의 번복,

끊임없는 자아성찰과 의문이 아니고서는 바보가 밖에 없는,

뒤통수 맞은 것처럼 깨어 일어나 들추어본 오래된 서재의 톨스토이의 참회록을 훑어보며

하루의 문을 엽니다.

언제나 생각을 말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당대의 거장들은 인정받지 못해도 당당할 있었던 것에 심심한 경의를 표하는 것으로 이만 마무리 할까 합니다.

 

 

다음의 인용한 것은 인간의 지혜가 삶의 의문에 대하여 대답한 가지의 해답입니다.

 

육체의 삶은 악이며 거짓이다. 따라서 이러한 육체의 삶을 멸절시키는 것은 선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희망해야 것이다.”소크라테스

 

인생이란 존재해서는 되는 것이다.   그것은 악이다. 

그러므로 삶으로부터 무로서의 전환은 인생의 유일한 선이다.” 쇼펜하우어

 

세상에는 모든 어리석음도 현명함도 부유함도 가난함도 기쁨도 슬픔도 공허하고 무가치하다.

인간은 죽는다.  그리고 뒤에 남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솔로몬

 

고뇌와 노쇠와 죽음이 피할 없다고 하는 것을 의식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다.

나의 몸을 삶으로부터, 삶의 모든 가능성으로부터 해탈시키지 않으면 된다.” 석가모니

 

 

"인간은 자기 자신을 속일 수는 없다.

그렇다면 모든 것은 헛되고 헛된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자가 오히려 행복한 것이다.

죽음은 삶보다 낫다.

그러므로 삶에서 해탈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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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피앨리슨 HappyAlly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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